량치차오 평전

량치차오 평전

  • 자 :셰시장
  • 출판사 :글항아리
  • 출판년 :2016-09-07
  • 공급사 :(주)북큐브네트웍스 (2016-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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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전진을 추동한 ‘신민新民’ 량치차오,

그의 사후 출간된 전기 가운데

가장 객관적이고 가장 상세하며

가장 방대한 평전!




“개인 전기를 중국 근대사로 써내는 일은 오직 량치차오의 경우에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량치차오는 위대한 역사적 존재로서 중국 근대사에 등장하는 각종 요인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정치적·사상적·문화적 측면에서도 그러하고 국내 및 국외 관계망 속에서도 다 그러하다.” _류짜이푸(디아스포라 지식인, 작가·문학평론가)



“시각이 참신하고 자료가 알찬 데다 견해도 독창적이어서 아주 훌륭한 저서라 할 만하다.” _우쓰(『염황춘추炎黃春秋』 전 편집장)



“량치차오는 백과전서적 인물이다. 드넓은 바다와 같은 그의 일생을 책 한 권으로 파악하기란 진실로 쉽지 않은 일이다. 셰시장은 문학과 사학을 함께 공부했고, 량치차오 연구의 기본 소양을 잘 갖추고 있다. 그가 이 책에서 량치차오의 일생을 이처럼 분명하고 전면적으로 파악·분석한 것은 참으로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다.” _레이이(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 연구원)



이 책은 량치차오의 생애와 경력을 날줄로 삼고 그가 중국 근현대사의 대표 인물 14명과 교류한 내용을 씨줄로 삼아, 량치차오라는 인물과 그가 견지한 사상의 역사적 가치 및 현재적 역사를 ‘사람과 사람’ 중심으로 보는 얼개에 기대 량치차오의 삶을 풍요롭게 조명하면서, 각 인물 간의 관계와 이들이 시대와 벌이는 장엄한 파노라마를 펼쳐 보여준다.

아울러 저자는 청나라 말기와 중화민국에 이르는 대변동의 국면에서 당대 지식인이 겪은 고통과 방황 및 고난에 찬 탐색과정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중국뿐 아니라 우리의 전통과 근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량치차오라는 필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이 책은 그 관문으로 들어서는 출발점 역할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출간 의의



첫째, 지금까지 출판된 전 세계의 량치차오 전기 중에서 가장 상세하고 방대한 양이다. 중국어 원문으로 무려 70만 , 한글 번역으로는 거의 130만 자에 달한다.

둘째, 저자 셰시장은 신문사 편집기자 출신의 문학평론가 겸 문화비평가다. 그는 중학교 2학년을 마치고 공장으로 하방되어 중국현대사의 굴곡을 그대로 겪은 지식인이다. 이후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런민 대학人民大學에 진학하여 신문학을 전공했고, 대학 2학년 때 중국신문사中國新聞史 강의를 들으면서 량치차오를 알게 된 이후 평생토록 량치차오를 연구해오고 있다. 그는 기존 학계의 연구 동향에 밝으면서도 기존 학파에 구애되지 않고 독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저술을 할 수 있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이러한 그의 위치가 이번 『량치차오 평전』에도 잘 반영되어 있다.

셋째, 기존 량치차오 전기들이 연대순에 따라 사건 중심으로 단순하게 서술된 것에 비해 이 『량치차오 평전』은 량치차오를 중심에 놓은 인물 열전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마치 사마천의 『사기열전』의 서술방식을 본뜬 듯하다. 이런 방식으로 저자는 량치차오의 생애를 날줄로 삼고 중국 근대 대표 인물 14명을 씨줄로 삼아 중국 근대사 전체를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그 14명의 인물은 캉유웨이康有爲, 황쭌셴黃遵憲, 탄쓰퉁譚嗣同, 왕캉녠汪康年, 탕차이창唐才常, 쑨중산孫中山, 장타이옌章太炎, 양두楊度, 위안스카이袁世凱, 차이어蔡鍔, 장바이리蔣百里, 딩원장丁文江, 후스胡適, 쉬즈모徐志摩 등이다. 이들의 이름만을 살펴봐도 량치차오가 중국 근현대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량치차오 평전이면서, 중국 근대 인물 열전이고, 중국근대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넷째, 기존의 중국 근현대사나 중국 근현대 인물 전기가 대부분 중국사회주의 혁명사의 노선에 따라 이념 중심으로 단선적 기술에 치우쳤다면 이 책은 량치차오를 중심에 놓고 중국근대사의 다양한 모색 과정을 풍부한 원전 자료를 통해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중국혁명사에서 부르주아 지식인 혹은 개량파 지식인으로 낙인찍힌 주요 지식인들의 활동상이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다. 폭력 혁명을 배척하고 개량과 입헌에 입각하여 새로운 중국을 건설하자고 주장한 이들의 논리는 중국혁명사 뒤편에 잠복되어 있었지만 문화대혁명 이후 서서히 중국 개혁의 흐름을 타고 중국 내에서 발언권을 강화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 책은 최근 중국 지식인의 이러한 모색의 일단을 잘 보여주고 있다.





20세기에 철저히 왜곡된 20세기의 거인



중국에서는 1980년대에 베이징출판사에서 출판한 『량치차오 평전梁啓超傳』이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량치차오를 높에 평가하기는커녕 짓밟고 있었다. 량치차오는 중국 근대 시기 위대한 계몽사상가다. 중국사회가 고대에서 현대로 나아가는 역사 전환기를 살아낸 위대한 개혁가다. 그러나 저자는 량치차오를 본받을 것 하나 없는 사람으로 서술하고 있었고 결국 역사의 전진을 방해한 반동 인물로 낙인찍고 있었다. 20세기 하반기 30년의 중국은 ‘혁명은 신성하다’는 사조가 모든 것을 압도할 때여서 급진주의가 세상을 뒤덮었고, 이 와중에 량치차오도 자연스럽게 ‘역사의 죄인’이 되었다. 류짜이푸는 이를 “30년 전의 공포”라고 말했다. 류짜이푸에 따르면 이번 셰시장解璽璋의 새 저서 『량치차오 평전』이 나오고서야 량치차오의 삶과 그의 역사적 위상이 오롯이 복권되었다. 이번 평전은 전반부 3장에서만 량치차오의 출신, 혼인, 가정생활을 서술하고, 그 나머지 모든 장에서는 량치차오와 중국 근대 역사 인물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이는 바로 ‘사람’을 중심으로 삼은 구성이다. 같은 논리로 말하자면, 역사를 ‘사람’ 중심으로 보겠다는 것이다. 전기傳記 서술에서 이러한 구상과 얼개는 ‘세가世家’와 ‘열전列傳’을 역사의 핵심으로 삼은 『사기史記』의 서술방법과 유사하지만, 이 책에서는 수미일관한 주인공이 한 사람 더 보태져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주인공과 등장인물이 모두 타당성을 얻는 가운데 논리적 맥락이 분명하게 이어지며 역사성에다 문학성까지 갖추고 있다. 저자의 문체는 량치차오 문체와 아주 유사하다. [그것은] ‘량문체梁文體’라 불러도 좋을 만한 것이었다. 량치차오의 문체는 중국의 고대 문언문文言文이 현대 백화문白話文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문체로, 5·4 백화문운동의 선구적 문체라 할 수 있다.

‘량문체’의 탄생은 그 자체만으로도 거대한 문화변혁이라 할 정도였다. 량치차오 문체는 고의로 ‘고아古雅하게’ 보이려는 학문 태도를 타파했다. 동성파桐城派 문체를 타파했을 뿐 아니라 장타이옌과 우루룬吳汝綸 문체를 타파했다. 량치차오는 분명하고 유창한 문체를 힘써 추구했고 논리적 진술과정에 정감이 스며들도록 했다. 량치차오는 스스로 언급한 대로 “붓끝이 항상 정감을 띠도록 하면서筆端常帶情感” 심오한 내용을 쉽게 서술하는 가운데 통쾌하고 거침없는 문체를 형성했고, 이에 따라 그의 문체는 중국 전역을 뒤흔들었다. 1000쪽에 이르는 셰시장의 이 책은 ‘량문체’에 의해 지탱되고 또 이치와 고증을 한데 버무려넣는 량 씨의 학문방법이 잘 어울려 있어서, 고금古今 두 가지 언어가 주는 참맛까지 음미할 수 있다.





폭력과 혁명의 단선적 근대사 서술에 일침



량치차오가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90년이 거의 다 되었다. 그는 살아서 체포·수배·비난·매도의 고통을 겪었고, 죽어서도 질책·조롱·폄하·비판을 당했다. 그런데 근래 20~30년 동안 개혁의 바람이 중화의 대지를 휩쓸고 ‘폭력 숭배’가 점차 퇴색하면서 량치차오의 이름도 다시 향기를 발하고 있다. 중국 국내에는 량치차오를 평론한 문장이 우후죽순처럼 발표되었고, 중국 역사는 마침내 량치차오에게 공정한 평가를 내렸다.

셰시장이 쓴 이번 『량치차오 평전』은 여러 면에서 후성이 쓴 중국 근대사 명저 『아편전쟁에서 5·4운동까지從鴉片戰爭到五四運動』와 대비된다. 이 책은 수백만 부가 팔려 중국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이 책은 전체 구성에 치명적이고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 바로 중국 근대사를 ‘태평천국혁명太平天國革命’ ‘의화단혁명義和團革命’ ‘신해혁명辛亥革命’이라는 단선적 폭력혁명사로 재단한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중국 현대문명 건설’의 중대한 노선 즉 ‘양무운동洋務運動’ ‘개량운동改良運動’ ‘입헌운동立憲運動’ 역사를 모조리 빠뜨린 채 단편적이고 불완전한 단선적 근대사 서술로 치우치고 말았다. 그러나 셰시장의 『량치차오 평전』을 읽어보면 중국 현대문명 건설의 역사에 공예기계 건설, 사회제도 건설, 사상문화 건설 등 세 영역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영역 건설에는 쩡궈판曾國藩, 리훙장李鴻章, 장즈둥張之洞 등이 크게 공헌했다. 둘째와 셋째 영역 건설에는 량치차오의 공로가 세상을 뒤덮었다. 그는 세계 각국의 사회제도를 연구하고 고찰하고 소개했거니와 전제專制제도에서 공화제도로 나아가는 중국의 제도 개혁에 직접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그가 담당한 역할은 모든 사람이 이미 인정하는 바다. 그는 제도 개혁에서 선봉장 역을 수행한 것 말고도 사상문화의 변혁 과정에서도 첫 번째 계몽자 역을 담당했다. 적어도 량치차오가 수행한 드넓은 계몽의 범위만 놓고 본다면 그에 비견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옌푸嚴復의 『천연론天演論』이 물론 중국 근대 계몽의 첫 종소리였고, 그것이 그 한 세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지만 이후 옌푸의 다른 문장은 량치차오 문장이 끼친 영향력에 훨씬 못 미쳤다.

게다가 옌푸는 량치차오처럼 시종일관 역사의 전선에서 분투하지도 못했고 또 시대의 계몽 중심에서 활동하지도 못했다. 셰시장의 『량치차오 평전』이 지니는 가치는 량치차오 개인의 역사를 드러내는 데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 근대의 ‘문명 건설’ 역사를 밝혀내어 후성이 쓴 중국 근대사의 결함을 보완했다는 데도 놓여 있다. 우리는 셰시장의 이 저서를 통해 중국 근대의 새로운 제도와 새로운 문화 건설이 얼마나 험난했고 얼마나 복잡다단했는지, 그리고 그것을 위한 투쟁이 얼마나 장렬하고 얼마나 잔혹했는지를 목도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생략할 수 없고 말살할 수 없는 중국 근대사의 중대한 일맥이다. 셰시장의 이 저서는 중국 근대사를 연대순으로 배열한 편년사가 아니라 량치차오를 중심인물로 삼은 근대 인물 활동사(기실 역사 사건도 포함됨)다. 사람은 역사의 정보를 저장하는 기억장치다. 따라서 사람을 중심에 놓는 역사야말로 살아 있는 역사이자 가장 진실한 역사다. 과거에는 항상 ‘역사의 필연성’을 운운했지만 기실 역사에는 우연성이 가득하다. 우연이 생기는 까닭은 바로 사람이 역사를 창조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기계적 운동이 아니라 사람의 능동적 작동으로 움직이는 셈이다. 셰시장은 이 저서에서 인물 및 그와 얽힌 갈등구조를 서술의 뼈대로 삼고 있다. 이는 역사의 우연을 더욱 진실하게 드러내는 방식이다. 이런 드러냄의 방식 속에 풍부하고 상세한 사료, 냉정하고 공정한 사관史觀, 역사 인물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또 그 속에는 전체 서술을 통해 다채롭게 드러나는 ‘역사의 맨살’ 즉 역사의 피와 살 그리고 역사의 희비극까지 다양하게 담겨 있다.

개인 전기를 중국 근대사로 써내는 일은 오직 량치차오의 경우에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량치차오는 위대한 역사적 존재로서 중국 근대사에 등장하는 각종 요인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정치적·사상적·문화적 측면에서도 그러하고 국내 및 국외 관계망 속에서도 다 그러하다. 량치차오는 역사적 풍모를 잘 보여주는 각계각층 주요 인물과의 관계망 속에서, 유일무이하게 기승전결의 과정을 보여줄 수 있고 앞뒤 세대를 이어줄 수 있는 인물일 뿐만 아니라 전후 역사를 좌지우지한 핵심 인물이기도 하다. 이러함은 그의 선진 사상과 다방면의 재주에서 기인하기도 하지만 그 자신이 드러내는 두 가지 큰 특징에서 비롯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캉유웨이형 지식인과 량치차오형 지식인의 대비



첫째, 량치차오는 방대한 문자 언어의 보유자이면서 또 방대한 실천 언어의 보유자이기도 하다. 그는 방대한 ‘지식’체계를 창조했고 또 방대한 ‘행동’체계까지 창조했다. 이 때문에 량치차오는 사상계·문화계·학계 인물과 관계가 밀접했고, 또 정계·군부·외교계·교육계·재계 인물과도 관계가 밀접했다. 말하자면 량치차오는 중국 근대사를 창조한 각종 주류 인물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둘째, 량치차오는 매우 보기 드문 지행합일의 소유자일 뿐더러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지극히 ‘겸손하고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중국 근현대사에는 역사의 전진을 추동했으면서도 매우 ‘겸손하고 온화한’ 세 특별한 인물이 있다. 바로 량치차오, 차이위안페이蔡元培, 후스다. 이들은 위대한 성취를 이루었지만 한 번도 독점적 지위를 누리지 않았다. “새로운 기풍을 열고도 스승으로 군림하지 않은 것이다.”

량치차오는 과감하게 큰일을 결단하면서도 작은 일에는 늘 겸손하고 온화하게 처신했다. 각종 인물과 허심탄회하게 교류하면서도 원칙을 잃지 않았다. 이러한 성격상의 매력으로 위안스카이와 같은 사람과도 상극이면서 상생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량치차오는 천변만화하는 중국 근대사에서도 주류를 이끌며 매우 정채精彩롭고 생동감 있는 한 페이지를 열어 보일 수 있었다. 만약 ‘캉유웨이 전기’를 쓴다면 주인공과 등장인물을 토대로 하는 묘사기법을 선택하기 어려울 것이다. 캉유웨이는 량치차오보다 사상적·이념적 측면에서 독창성도 강하고 이론적 깊이도 있지만, 성격이 전제적이고 고집스러우며 주관적인 데다 명성도 높고 독단적이어서 ‘겸손하고 온화한’ 기풍과는 매우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류짜이푸는 온화하고 포용성 있는 성격은 중국인에게 가장 부족한 문화적 요소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캉유웨이는 친구가 매우 적었고 인간관계도 넓지 못했다. 더욱이나 캉유웨이는 량치차오가 황쭌셴·탄쓰퉁과 왕래하면서 보여준 서로 함께 웃고 서로 함께 우는 경지의 시적 운치를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셰시장은 바로 량치차오의 특별한 지위와 성격을 예민하게 포착해서 ‘주객일치’ 묘사법을 통해 인물을 서술하면서도, 광대한 중국 현대사를 다 포괄하는 효과를 이루어낸다. 이러한 구상과 묘사법이 성공적이라는 사실은 추호도 의심할 바 없다.

량치차오는 일찌감치 전제라는 감옥을 깨뜨렸고, 아울러 사상의 자유가 펼쳐진 광활한 하늘과 땅위에서 마음껏 노닐었다. 량치차오의 사상체계에는 자유가 충만하고 정체는 드물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변화에 능란하다善變’고 공격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실 량

치차오의 ‘변화’는 시대와 함께 전진하는 모습에 다름 아니었다. 이는 량치차오가 바로 진리 탐구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아집’과 ‘타인의 고집’을 돌파하면서 진리를 향해 나아간 사실을 말해준다. 그는 스승 캉유웨이를 존경했지만 캉유웨이가 장쉰張勳과 힘을 합쳐 황제를 복위하려 하자 더이상 스승에게 충절을 보이지 않았다. 량치차오는 위안스카이가 공화제를 도우며 평화롭게 마지막 황제를 퇴위시켰을 때 위안스카이와 타협했다. 그러나 위안스카이가 공화제를 파괴한 뒤 자신이 황제가 되려 하자 바로 창끝의 방향을 바꾸어 위안 씨에게 치명적 타격을 가했다. 그의 이러한 변신은 복잡다단한 풍운의 근대사에서 오직 국가 이익만을 중시하며 개인적 인간관계는 따지지 않는 위대한 인격의 표현이었다. 량치차오는 여러 차례 ‘오늘의 자아’로 ‘어제의 자아’를 반대했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는 변화지만 그 심층을 탐구해보면 시종일관 변하지 않은 몇몇 측면도 드러난다. 그것은 바로 량치차오의 애국심과 구국의 격정, 그리고 중국을 전제제도에서 공화제도로 인도하고, 부강으로 인도하고, 자유로 인도하려는 그의 노력이다.

량치차오 연구자 레벤슨은 자기 저작에서 이렇게 인식했다. “량치차오는 이념 면에서 서구의 가치체계에 공감했지만 정감 면에서는 중국의 전통적 인문체계에 공감했다.” 이러한 판단에 의거해 량치차오 생애의 초기와 중기를 개괄할 수는 있다. 하지만 5·4운동이 발생하고 나서 량치차오 생애가 후기로 접어들고부터는, 다시 말해 량치차오가 연구실로 들어간 후부터 그는 정감 면뿐 아니라 이념 면에서도 완전히 중국문화 특히 유가문화의 기본 가치에 공감하고 있다. 이는 결코 기괴한 현상이 아니다. 한 인간으로서 특히 역사의 거인으로서 량치차오는 인생이 매우 풍부하고 복잡해서 ‘급진’ ‘보수’ ‘혁명’ ‘반동’과 같은 본질화된 개념으로 단순하게 묘사하거나 판단하기가 어렵다. 셰시장이 쓴 이 저서의 장점은 본질화 즉 단순화에서 벗어나 자신의 모든 역량을 역사 사실에 대한 고증과 묘사에 쏟아붓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또 근대사 인물 평가에서도 구체적 역사 인물이 중국의 진보에 공헌한 사실을 객관적이면서도 진실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역사책은 역사적 공평성을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비교적 믿을 만하다. 가성이 높고 믿을 만한 책을 만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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